독일에서 병원 진료를 받은 뒤 의사가 약을 처방해 줬는데, 손에 종이 처방전이 없어 당황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진료가 끝나면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제출하는 방식이 익숙하지만, 독일에서는 현재 대부분의 처방약이 E-Rezept, 즉 전자처방전으로 처리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처방전은 어디에 저장되고, 약국에서는 무엇을 보여줘야 할까요? 이번 글에서는 처음 독일 병원을 이용하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독일에서 처방전을 받는 과정을 진료부터 약 수령까지 순서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독일에서는 의사가 약 처방 여부를 결정한다
독일에서 처방전을 받기 위한 첫 단계는 Hausarzt(가정의)나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것입니다. 의사는 환자가 설명한 증상과 진찰 결과, 기존 질환, 복용 중인 약을 바탕으로 약이 필요한지 판단합니다.
한국에서 먹었던 약의 이름을 이야기하거나 특정 약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환자가 원한다고 해서 반드시 처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는 해당 약이 현재 증상에 필요한지, 다른 약과 충돌할 가능성은 없는지, 부작용 위험은 어떤지를 확인한 뒤 처방을 결정합니다.
진료를 받을 때는 다음 정보를 준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 증상이 시작된 시점
- 현재 가장 불편한 증상
- 복용 중인 약과 복용량
- 약물 알레르기
- 기존 질환
- 한국에서 복용했던 약의 이름이나 성분
한국 약의 상품명만으로는 독일 의사가 정확한 성분을 확인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약 포장이나 사진을 보여주고, 성분명과 복용량까지 함께 전달하는 편이 좋습니다.
처방약과 일반의약품은 구분해야 한다
독일의 약은 크게 처방전이 필요한 약과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약으로 구분됩니다.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은 독일어로 verschreibungspflichtige Arzneimittel이라고 합니다. 항생제나 일부 고혈압약처럼 의학적인 관리가 필요한 약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런 약은 약국에서 임의로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이 필요합니다.
반면 일부 진통제, 감기약, 목 스프레이 등은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독일 보건 포털도 약을 처방 의무가 있는 의약품, 약국에서만 판매하는 의약품, 일반 판매가 가능한 의약품 등으로 구분해 설명합니다.
다만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임신 여부, 기존 질환, 복용 중인 약에 따라 주의해야 할 수 있으므로 약사에게 현재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진료 후 E-Rezept가 발급된다
독일 공보험에 가입한 환자에게 처방 의약품을 발급할 때는 현재 전자처방전인 E-Rezept가 기본적으로 사용됩니다. E-Rezept는 2024년 1월부터 독일 법정 건강보험의 처방 의약품 발급에 의무적으로 사용되는 표준 방식이 됐습니다.
의사가 약을 처방하면 진료실 시스템에서 전자처방전을 작성한 뒤 전자서명합니다. 처방 정보는 단순히 건강보험 카드 안에 직접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보안이 적용된 중앙 시스템에 등록됩니다.
그래서 진료가 끝난 뒤 종이 처방전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처방이 누락된 것은 아닙니다. 병원 직원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Das Rezept ist auf Ihrer Gesundheitskarte.
처방전이 건강보험 카드에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처방 내용 자체가 카드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약국이 건강보험 카드를 읽으면 시스템에 등록된 유효한 전자처방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약국에서 건강보험 카드를 제시한다
전자처방전이 정상적으로 발급됐다면 가까운 Apotheke를 방문하면 됩니다. 특정 약국만 이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원하는 약국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약국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 됩니다.
Ich möchte mein E-Rezept einlösen.
전자처방전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그다음 공보험 건강보험 카드인 elektronische Gesundheitskarte, eGK를 약국의 카드 단말기에 넣습니다. 약국은 카드를 통해 아직 사용하지 않은 전자처방전을 조회하고 처방된 약을 확인합니다.
독일 연방보건부와 공공 보건 포털은 건강보험 카드를 약국 단말기에 넣는 방법을 E-Rezept의 기본적인 사용 방식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별도의 스마트폰 앱이나 카드 PIN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처방전이 여러 개 남아 있다면 약사에게 이번에 받을 약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Ich möchte nur dieses Medikament abholen.
이 약만 수령하고 싶습니다.
약이 재고에 있다면 바로 받을 수 있지만, 재고가 없다면 약국에서 주문한 뒤 나중에 다시 방문해야 할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 카드 외에도 처방전을 사용할 수 있다
E-Rezept를 사용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건강보험 카드를 약국에 가져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이 방법만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환자는 다음과 같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전자 건강보험 카드
- E-Rezept 앱
- 건강보험사 또는 약국 앱
- 처방전 코드가 인쇄된 종이 출력물
독일 연방보건부는 가입자가 자신의 상황에 따라 건강보험 카드, 앱 또는 종이 출력물을 선택해 전자처방전을 사용할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거나 건강보험 카드를 바로 사용할 수 없다면 병원에서 다음과 같이 요청할 수 있습니다.
Könnten Sie mir bitte einen Ausdruck geben?
출력물을 주실 수 있을까요?
이 종이는 과거의 일반 종이 처방전과 완전히 같은 방식은 아닙니다. 종이에 표시된 처방전 코드를 약국이 스캔해 전자처방 정보를 불러오는 구조입니다. 실제 처방의 유효성은 종이 자체가 아니라 의사가 전자서명한 전자처방 데이터에 있습니다.
약국에서 처방전이 보이지 않는다면
병원에서 처방했다고 들었는데 약국에서 E-Rezept가 조회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사의 전자서명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거나, 처방 정보 전송이 지연됐거나, 병원 또는 약국 시스템에 일시적인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약국 직원에게 다시 확인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Könnten Sie bitte noch einmal nachsehen?
한 번 더 확인해 주시겠어요?
그래도 처방전이 보이지 않는다면 처방한 병원에 연락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Die Apotheke kann mein E-Rezept nicht finden.
약국에서 제 전자처방전을 찾을 수 없습니다.
건강보험 카드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병원에 처방전 코드가 포함된 출력물을 요청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공식 의료 안내에서도 카드 이용이 어려운 경우 환자용 출력물을 통해 E-Rezept를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약을 받을 때 반드시 확인할 것
처방된 약을 수령할 때는 약 이름만 확인하고 바로 나오는 것보다 복용 방법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다음 내용을 물어보세요.
- 한 번에 얼마나 복용하는지
- 하루에 몇 번 복용하는지
- 식전인지 식후인지
- 다른 약과 함께 먹어도 되는지
- 운전이나 음주를 피해야 하는지
약국에서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Wie soll ich das Medikament einnehmen?
이 약을 어떻게 복용해야 하나요?
Soll ich es vor oder nach dem Essen einnehmen?
식사 전과 후 중 언제 복용해야 하나요?
Kann ich es zusammen mit meinen anderen Medikamenten nehmen?
제가 복용하는 다른 약과 함께 먹어도 되나요?
처방한 의사의 설명과 약국의 안내가 다르게 느껴지거나 복용법이 확실하지 않다면 임의로 판단하지 말고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독일 처방전 발급 과정 한 번에 정리하기
독일에서 처방약을 받는 기본적인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먼저 Hausarzt나 전문의에게 진료받고, 의사가 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E-Rezept를 발급합니다. 환자는 약국에서 건강보험 카드를 제시하고, 약국은 시스템에 저장된 처방전을 조회한 뒤 약을 제공합니다.
즉, 기본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병원 진료 → 의사의 처방 결정 → E-Rezept 발급 및 전자서명 → 약국 방문 → 건강보험 카드 제시 → 약 수령 및 복용법 확인
종이 처방전을 받지 않았더라도 대부분은 건강보험 카드로 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앱을 설치하고 싶지 않다면 설치하지 않아도 되며, 필요하면 병원에서 종이 출력물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독일에서 처음 처방전을 받으면 종이가 없다는 점 때문에 과정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의사가 전자처방전을 발급한 뒤, 환자가 건강보험 카드를 가지고 약국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처방이 완료됐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Ist das E-Rezept schon ausgestellt?
전자처방전이 이미 발급됐나요?
약국에서는 다음 문장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Ich möchte mein E-Rezept einlösen.
전자처방전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독일의 처방전 시스템은 종이에서 전자로 바뀌었지만, 환자가 해야 할 일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진료 후 처방이 발급됐는지 확인하고, 건강보험 카드를 가지고 약국에 방문한 뒤, 약을 받을 때 복용 방법을 정확히 확인하면 됩니다.